
첫여름 완주
손열매라는 여주인공은 같이 살던 룸메이트(고수미)가 돈을 빌려 어느날 사라진다.
무명의 성우인 손열매는 우울증을 앓고 있지만, 본인은 잘 알아체지 못한다.
성우 직업인데 우울증 때문에 목소리까지 떨려와 성우 일감도 별로 못잡는다.
어느 봄 완주라는 마을에 있는 고수미의 집을 찾아간다.
고수미의 집에는 수미엄마가 장례업과 매점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고수미를 만날수는 없었고, 갈곳 없으면 자고 가라는 수미엄마의 말에 어찌 하다 그곳에 머물게 된다.
완주라는 동네는 예전에 큰 물난리로 아이들이 먼저 죽은 집들이 많다.
그중에 고수미와 산속에 사는 어저귀만 살았고, 장례업을 하는 수미네 집은 아이들이 죽은 슬픔과 수미만 살아 있는 미움을 동시에 받은 듯 하다.
완주 동네는 골프장이 들어서 재개발 할 예정인데, 찬성파와 반대파가 나뉘어 있다.
그나마 학생이 3명 밖에 없는 초등학교를 폐교시키려 한국 학생한테, 서울로 가라고 바람 넣는 어른도 있다.
2명은 외국 혼열아 인듯 한데, 이름 대신 인도 아이는 간디, 러시아 아이니 푸친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매점에서 알바를 하며 여름을 완주에서 지낸다.
그리고 어저귀라 불리는 산속에 사는 남자와 인연이 되는데, 그 남자는 외계인이라 불리며 자신이 400년을 살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던 여주인공은 점점 우울증을 치료 해 가는 듯 하다.
그리고 어저귀라 불리는 남자와 그냥 봐도 좋은 사이로 발전한다.
어느 날 동네에 사는 여배우 집에서 영화를 보고 와인을 마시고 내려오는데, 산속에 불이 난다.
그리고 산속에 살던 어저귀는 찾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첫장에 영화 마스크의 얘기가 나온다.
손열매가 처음으로 성대모사 한 사람은 스탠리입키스였다. 그는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고대의 나무 가면을 쓰면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다.
나는 지금의 MZ들이 마스크라는 영화를 아는가 궁금했다. 나는 그 영화를 그리 재미있다기 보다는 유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기억에는 별로 남는게 없는 영화였다.
책은 읽기 수월하게 쉽게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중간 지문처럼 등장하는 부분이 있고, 서로 대화하는 부분을 적어 놓았는데, 나는 이게 소설책이 아니라 시나리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소설책으로 만든 책이 있고, 시나리오 만든 책이 있는데 나는 시나리오 책을 대출 받은 것이었다.
오토바이 소리가 나다 멈추며 이장이 가게로 들어온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같이 식사 하는 장면이 있는데, 공진단 같은 걸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입으로 넣었는데 그 순간 무언가가 풍선처럼 불어났고 열매는 서둘러 씹었다. 미뢰와 후각 세포가 사이키 조명처럼 번쩍번쩍 돌아갔다. 침이 서둘러 공급되었다. 두부와 들기름 향이 산나물의 쌉싸름한 향과 함께 퍼졌다.
이부분이 나는 이해? 또는 공감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좋아 하는 사람과 있으면 무얼 먹어도 다 맛있고, 안먹어도 배부르고 그런거 아니겠는가?
친교적 조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
손가락으로 미세한 통증처럼 친교의 신호가 들어오는 동안에도, 수미를 찾는 게 이 여름의 목적이었으면서도 그런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저귀는 열매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머리 위에 떨어진 나뭇잎을 털어 주었다. 열매가 그 손길을 기억하고 싶어 눈을 감자 어저귀는 허리를 숙여 다가왔고, 열매는 발끝을 들어 어저귀의 입술에 입술을 대고 숨을 불어넣었다.
이 장면에서 나무 뿌리와 교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바타의 생명의 나무? 아이와 나무가 생각이 났다.
남녀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구덩이를 파고 둘만 있는데 어찌 전기가 통하지 않을까? 그것도 서로 좋아 하는 감정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연애시작 단계에...
독서 모임에서 다른 회원은 이 부분을 어저귀 ≠ 인간이 아닌 어저귀 = 자연으로 해석 하였다. 그래서 열매라는 주인공이 우울증을 자연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회복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이야기 했다. 색다른 시각이였다.
어저귀란 별명으로 불리였지만, 마지막에 조열매는 큰소리로 강동경 하고 부른다.
P169
사고는 사고죠. 죽음은 슬픈 거죠.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책 제목이였던 완주는 소설속의 지명인 완주와 무엇을 끝낸다. 완성했다는 완주 중의적 표현일수 있다.
이 책에서 소설속 라디오 사연을 읽어 주는 신해철의 목소리로 전하고자 했던 것은 이거였던 것 같다.
어떤 어려움, 슬픔 속에서도 우리 각자의 몫을 완주 해야 한다는 것.
P215
작가의 말
2022년 6월, 나는 조금 특별한 방식의 소설을 제안 받았고 듣자마자 해 보겠다고 나섰다. 대신 나는 글자가 아니라 '소리'로 독서하는 분들과의 대화를 주선해 달라고 제안자에게 다시 '제안'했다. [첫 여름, 완주]는 그렇게 이루어진 시각 장애인분들과의 만남 덕분에 가능했다. 정기적으로 모여 독서 모임을 갖는 그분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나는 '스릴'과 '자연'이라는 두 단어를 간직한 채 거리로 나섰다. 벅찬 마음이었다.
마지막 아무것도 결론 나지 않고 열린 결말은 이렇게 끝인가 하는 허무함과 2편을 예고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지만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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