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서 나비처럼 나들이 길에 나선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목욕도 내게 절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 준다. 몸이 욕조 속에 잠기는 감미로운 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물장구를 칠 수 있었던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엄습한다. 따끈한 차나 한 잔의 위스키, 혹은 감칠맛나는 책이나 수북한 신문더미를 벗삼아 발가락으로 수도꼭지를 조절해 가며 욕조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곤 했었다. 목욕의 즐거움을 상기할 때만큼 현재의 내 상태가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많지 않다.
내 생각을 옮겨 적는 이 기호 체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참을 수' '견딜 수'에 뒤따라 나오는 '없는'이라는 부분을 스스로 알아서 완성시킨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도 좋다.
지난 8개월 동안 내가 먹은 것이라고는 레몬을 탄 물 몇 방울과 요구르트 반숟가락이 고작이었으나, 그것마저도 기관지로 잘못 넘어가 애를 먹었다. 병원측에서 과장적으로 '음식 섭취 시도'라고 명명한 이 모험은, 그다지 전망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P67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날, 나는 아버지의 수염을 면도해 드렸다. 내가 사고를 당한 바로 그 주였다. 어쩐 일인지 이날만큼은 아버지께서 책상 속에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적어 놓으신 편지가 정리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나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 없이 베르크의 휴양지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흔두 살이라는 고령 때문에 아버지의 아파트 계단도 못 내려오실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둘 다 '로크드 인 신드롬' 환자인 셈이다. 나는 마비된 내 몸 속에 갇혔고, 아버지는 4층 계단 때문에 발목이 묶이셨다.
미적지근한 체념 속에 안주하지 않으려면,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적당한 양의 분노와 증오심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P149 오늘은 일요일이다. 검은 파리 한 마리가 내 콧잔등에 와서 앉는다. 나는 파리를 쫓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본다. 그래도 놈은 버티고 있다. 올림픽 때 구경한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경기도 지금처럼 처절하지는 않았었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는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프랑스 잡지 ELLE의 편집장이다. 어느 날 아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뇌졸중이 발병한다. 그리고 '로크드 인 신드롬' 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한쪽 눈꺼풀만 움직일수 있고 온몸이 마비되었다. 언어치료사인 상드린느 덕분에 한쪽 눈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책의 제목을 보고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잠수종이 무엇인지 몰랐다. 잠수종? 잠수복이 아니고....? 검색을 해보니 잠수종은 사람이 들어가 잠수하는 종모양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모양이고, 이 책에서 표현하는 것은 사람 머리에만 쓰는 잠수핼맷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수십만번 눈을 깜빡여서 책을 썼다고 한다. 하루에 3~4줄을 완성하며 1년 넘게 책을 썼다고... 이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 주인공의 아들이 찾아왔지만 머리조차 쓰다듬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 아버지가 연로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주인공 또한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여서 만날 수 조차 없는 것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로도 다시 한 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