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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2025년 이미 읽은 책도 까먹는다 2025. 7. 29. 07:53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는 '특별한 경험'이나 '유머가 있는 글'이나 '남다른 '통찰'이 있는 글이다.
관심이 있다는 건 좋아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간다는 건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다는 건 좋아한다는 것이다.
P67
흑임자롤 뭔가 생김새가 얼그레이 케이크랑 비슷해서 맛있을 줄 알았는데 굉장히 건강한 맛이네. 검은깨 케이크라고 했다면 안 시켜 먹었을 텐데, 흑임자라는 네이밍은 왠지 모르게 '검은깨'를 한층 더 있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고급스러운 어휘의 적절한 사용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당신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걸 먹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 뭐야! 결국 나도 낚인 거였군. 흑임자(검을 흑, 들깨 임. 아들자)인데-아들자 9번째 뜻에 '열매'가 있다.
P84
500자 글쓰기는 나를 위해 쓰는 글입니다. 누구에게 보여주고자 쓰는 글이 아닌, 현재 나의 감정과 기분을 다스리기 위해 씁니다. 고로,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며 그러면서 생기는 글쓰기를 가로막는 내 안의 틀을 깨부수는 작업입니다. '너무 가볍지 않아?', '너무 쓸데없지 않아?', '너무 사적이지 않아?' 이런 생각에서 '가벼운 게 어때서?', '무겁게만 쓰면 재미 없잖아!', '쓸데없으면 안 돼?', '유용함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쓸데없이도 좀 써보자!', '사적인 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남들은 부끄러움을 어디까지 감수하지?', 1년 뒤에 읽었을 때 이불 킥하면 어떻게 하지? 이불킥 좀 하면 어때!'로의 사고의 흐름을 느끼면서 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 쓰세요. 남들을 의식하다 보면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해 세상과의 접점을 찾는 것이 글쓰기의 재미 아닐까요.
P89
감정과 생각은 머리에만 남겨둘 경우,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한데 글로 쓰는 것이 바로 그러한 작업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의 감정에는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며 위로하는 반면, 자신의 감정에는 관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책하고 비난하고 우울해지기 쉽지요.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어렵지만,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고 이해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오듯이 글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나를 위로하며 내일로 나아갑니다.
삶에는 관성이 있다. 계속해 왔던 일을 의식적으로 멈추거나 바꾸지 않으면, 내가 그 일을 원해서 하는 건지 계속하니까 내가 그 일을 원하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내 마음 안에 있는 것을 놓지 않고 적절히 의심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때 인생은 무언가를 내준다고 생각하는데, 삶의 관성 때문인지 내 마음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이제는 나도 헷갈린다.
P97
자기다움이라는 목표로 각자 원하는 삶의 모습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고, 생존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10년을 보냈다. 그렇게 해볼 건 해보고 단념할 건 단념하며 지금의 자리에 자리 잡은 이들. '자기다움이란 공통점을 갖고 모였기에 동호회도 자기 계발 모임도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느슨하지만 끈끈하게 연을 이어가고 있다.
10년 전에 꿈꿨던 자기다움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지금의 모습이 자기다움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은 그때그때 필요한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고, 그걸 감당하며 살면 그게 자기다움이 아닐까.
P110
탓할 것인가, 덕 볼 것인가?
새람 덕의 의미를 찾아봤다.
1.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
2.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3.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 네이버 국어사전
나이 들수록 관성에 의한 관계보다는 의식적 노력으로 유지되는 관계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덕과 무관하지 않다.
함께 있어서 기분이 좋은 것도 덕이며, 배울 점이 많은 것도 덕이며, 나의 가치나 자존감을 깨우는 것도 덕이;며,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도 덕이다. 덕 보고 싶은 사람이어야 관계가 유지된다. 여기서 덕은 '이익'보다는 '의미'에 가깝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어야 함께하고 싶어 진다는 말이다.
나 역시 집순이 중의 집순이다. 아니, 집순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의 방순이다. 침대가 있었다면 침대순이가 되었겠지만, 침대는 없으니 방바닥순이로 할까 하다가 너무 길어 방순이로 정했다.
창작자 이전에 직업인인 나는 직장인 같은 고정된 루틴을 갖기를 희망한다.P126
-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으며 모르는 것은 공부해서 알려 주면 된다.
- 가르치는 분야에 대해서 내가 좀 더 경험이 있는 건 맞으나 정보의 전달과 함께,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성장을 위해 적정의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과제를 주되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별 피드백을 조절한다.
나는 계속 가르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단어를 선택할 수 있다면 '가르치는' 보다는 '성장시키는' 이 더 좋다.
P131
뭐가 하기 싫을 땐 좀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삶을 이어간다. 주류의 삶은 아니지만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행복한 비주류로 살어리랏다.
알베르 카뮈가 자신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라고 했듯이 나도 알베르 카뮈의 말을 따르고자 한다. 다시 바위를 굴릴 수 있음에 그래도 시지프는 행복했을 거라고, 고민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이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알베르 카뮈의 정신을 이어받아 좋게 해석해 보자.
il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하여야 한다.>
P141
자존감은 자아존중감(나를 존중하는 마음)이고, 자존심은 타자존중감(남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를 포스팅한 적이 있다.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부족하다는 마음은 열등감을 부른다. 열등감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만드는데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다.
P133
내 선택이 결국 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500자를 꼭 채워야 하나요?
500자는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대스마트폰 시대에 노화에 접어든 분들은 조금 힘들겠지만, 핸드폰 화면을 꽉 채운 분량이 바로 500자입니다. 글을 통해 내 생각을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려면 최소한 A4용지 한 장 정도는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시작하는 이들에게 A4 1장은 흰 여백만큼이나 채우기 부담스러운 분량입니다. 그럴 땐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누구나 만만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작하면 좋습니다. 저는 그게 500자라 생각했습니다. 500자는 하나의 기준일 뿐 꽃 애우지 않아도 됩니다. 400자가 되어도 좋고, 600자가 되어도 좋습니다. A4 용지 한 페이지에서의 한 줄은 50자 정도입니다. 10 줄 정도는 써본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세요. 쓰다 보면 10줄이 채워지는 몰입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P163
방귀 많이 뀌세요
양육과 케어에 들어가는 애정도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아기를 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동물을 케어하는 것보다 좀 더 고난도라 생각한다. 인간은 성장 발달기마다 케어의 방식과 애정 표현이 달라지지만, 반려 동물은 성견이 되기까지의 케어, 성견이 된 후의 케어 그리고 노견이 된 후의 케어로 상대적으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장이 약해 종종 장 트러블로 고생하는 코천이가 이번에도 뭘 잘못 먹었다. (알고 보니 양배추를 먹은 것, 양배추는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인데 코천이는 소화를 잘 못 시켜서 주지 않는다) 저녁부터 복명음(배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이 엄청나고 방귀 냄새도 심하다.
걱정돼서 얼른 소화되라고 배도 만져주고(하지만 싫어함) 방귀도 많이 뀌라고 말해 주는데 문득 '이 말 왜 이렇게 서윗하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나 가족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말. 인간의 방귀 냄새와 소리를 환영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코천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애정한다면, 그 사랑이 식을 일은 없겠다.
"귀요미띠, 방귀 많이 뀌세요~ 방귀 많이 뀌고 빨리 나으세요~"
P179
거절 잘하는 법
나의 이런 불편한 감정은 내가 책임지겠으니 내 거절에 대한 당신의 감정은 당신 몫입니다의 자세로 정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된 거절의 증~신(정신)! 그러면 거절을 아주 잘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거절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당신을 위한 거절이기도 하다는 것. 대신, 표정은 부드럽게, 말투는 단호하게, 발걸음은 빠르게!
P195
어릴 적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잘한 이들은 비교적 글을 잘 쓰게 된다. 이건 머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머리 안에 들어 있는 정보가 많으면 그 정보를 연결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라 그렇다. 고로 공부를 잘하지 않았어도 내가 가진 정보가 많고 그걸 연결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기본 필력은 갖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많이 보는 것, 여행을 많이 하는 것, 남다른 경험을 많이 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있고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어느 정도의 요청이 가능하며 헤어가 완성되었을 때 '이 미용실은 걸러야겠군.' 또는 '이 선생님에게 정착해야겠군.'이라고 한 번이라도 판단한 적이 있다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이유는 80%의 고객은 전문가인 헤어 디자이너에게 시술의 잘못을 따지지 못하고, 어떤 원리로 헤어가 완성되는지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므로, 헤어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디자이너를 탓하거나 AS를 요구하기보다 미용실을 바꾸는 것을 택한다.
그나저나 영상 '계속 보기'를 누르면서 나의 마음은 '제발 괜찮아져라!'와 '별로여라!'를 왔다 갔다 하는데 같은 고객 입장이라면 전자를 원하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후자가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마음에는 안 들지만, 무료이므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표정) 결론에 다다랐다.
P241
남들을 배려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회피 성향을 배려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P248
생명에 대한 이중성
코천이를 산책시키다 로드킬 당한 무언가를 봤다. 맞은편 차선이었고 색깔이 회색 비슷한 걸로 봐서 청설모라고 생각했다. 로드킬을 자주 접하는 건 아니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죽어 있는 걸 보면 가급적 신고를 한다.
집에 가는 길에 얼핏 사체를 봤다. 색은 회색이었지만 청설모 같지 않았다. 그냥 쥐였을까? 그냥 쥐라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왜? 쥐는 더럽고 유해한 동물이니까. 순간 이상했다. 청설모라고 추측했을 때 느껴진 안타까움이 안도감으로 바뀌다니, 어떤 동물이냐에 따라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게 놀라웠다. 다 같은 생명인데 다분히 인간 중심의 시각이다. 사람이 살기에 피해야 하고 더럽고 무서운 것들은 죽어 마땅하고, 그렇지 않은 죽음에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고양이였다면 또 한 번 도시미관과에 전화했겠지만,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털색만 보이는 동물이라(정확히는 쥐라고 판단했기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
P304
1. 순수한 택시 기사님은 그런 글을 쓸 수 없다.
2.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은 따로 있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자기 검열을 열심히 하지만, 마흔 살 넘게 살면서 박힌 무의식적 편협함은 의식의 관점에서 쳐내기가 무척 힘들다.
부끄러운 흑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해마의 흑역사 일기장에도 기록해야지. 깨부수어야 할 편협한 생각이 내 안엔 아직도 너무 많다.
좋은 인사는 인간이 가진 매우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박정수 [좋은 기분] 북스톤
쓸 말이 없을 때 어떻게 하나요?
쓸 말이 없을 때는 하루 쉬어도 좋습니다. 하루 쉬었는데도 쓸 말이 없다면 또 쉬어도 좋습니다. 일주일은 7일로, 주 5일 동안 글을 쓰고 주말에는 쉬는 방식으로 500자 글쓰기를 진행했습니다. 평일에 쓸 말이 없었는데 주말에 갑자기 소재가 생각나면 주말에 쓰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규칙은 있지만 규칙에 얽매여 쓰기보다는 하나의 기준을 글로 꾸준히 쓴다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주 5일에 하루만 써도 좋습니다. 하지만 마냥 쉬기보다는 늘 소재를 찾고 눈과 귀를 글쓰기와 싱크해 메모장에 기록합니다. 저 역시 글쓰기 소재가 생기면 메모장에 바로바로 기록해 놓고 써먹었습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소재가 아닌 영화 리뷰를 기록해도 좋고, 드라마나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감을 적어도 좋습니다. 글쓰기에 제한은 없습니다. 하루에 하나씩 서 내려가는 그 맛으로 쓸 뿐입니다. 쓸 말이 없을 때는 마음 편하게 쉬고, 쓸 말이 생기면 마음 편하게 쓰세요.
P313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면 그게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고, 글쓰기의 3요소는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하지 않던가.
솔직히 일기와 에세이는 몇 가지 차이만 있을 뿐,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난 것과 같다고 보는 입장이다. 약간 이란성쌍둥이 같달까? 일기의 대상은 나다. 내가 쓰고 내가 읽는다. 에세이의 대상은 타인이다. 내가 썼지만, 타인에게 읽히기 위해 쓴다.
에세이는 글 이면에 정보, 재미, 감동, 의미(공감/위로), 통찰 등 하나 정도는 담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일기처럼 편한 글이지만 저자가 주고자 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체계가 강한 사람들은 에세이를, 논리적 체계가 강한 사람들은 자기 계발서를 쓰는 게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에세이라면 일단 일기처럼 시작할 것을 추천한다. 초심자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나는 작가가 아니'라는 팩트다.
에세이란, 남에게 보여주는 목적 있는 일기랍니다.
나는 일기와 에세이 사이에 견고한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번 쓰고 그대로 덮어버리면 일기, 독자를 생각하며 몇 번씩 읽어보고 고치면 에세이. 배지영 [쓰고 사람이 되고 싶다면] 사계절 출판사
P324
말하고 싶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는 것, 말하고 싶은 것과 들려주고 싶은 것과의 차이는 뭘까요? 제가 보기에는 전자가 나 중심이라면 후자는 독자 중심입니다. 독자가 궁금해할 이야기를 쓰는 것이 글의 속성이라고 답한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글을 쓰면서 타인의 시선을 이렇게나 의식하게 되었을까요? 모두가 그럴듯한 글을 써내는 작가처럼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된 걸까요?
'쓸 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나의 쓸 거리는 글로 쓰기에는 너무 하찮다.'라는 마음 가짐이 들기에 쓸 거리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글은 이야기를 누구나가 아닌, 나라는 개인이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글쓰기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위해 쓴다.'라는 마음가짐입니다. 500자로 쓴 이 책에는 일기 같은 글도 있고, 에세이 같은 글도 있습니다.
저 역시 남보다는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쓸모없는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지고 자괴감이 드는 과정을 견뎌야 합니다. 뭘 하든 생산적이고 쓸모 있어야 한다는 결과중심주의 문화가 쓸모없는 창작의 기쁨을 자꾸 외면하게 합니다.
남이 봤을 때는 '쓸모없어'보이지만 나에게는 '창작의 기쁨'이 되어주는 일, 쓸모없어 보이는 그리면 어떤가요,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무시하면 어떤가요, 쓰는 것에 의미를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저는 쓸모없는 글에서 쓸모 있는 글로 나아가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쓰다 보면 쓸모없음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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