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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2025년 이미 읽은 책도 까먹는다 2025. 8. 9. 11:10

     

     

    나는 책을 읽고 쓰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는 망했다. 최근에는 오디오에 빠져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고 있으며 종종(실은 자주) 죽음에 대해 생각 한다. 삶도 죽음도 모두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셈이다. 

     

    P60

    글이 안써져서 괜히 이 책 저 책 들춰 보다가 존 파울즈의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조금 읽었다.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는 다른 작가의 일기를 읽으면 괴로움은 두 배가 된다. 

    1951년 3월 11일의 일기를 파울즈는 이렇게 썼다. 

    강렬한 의지도, 반드시 쓰고 말겠다는 불타는 욕구도 없다. 게다가 여유 시간을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배분하고 있다. 글을 써야 할 시간에 실없이 수채화나 그리고 있는 것이다. 모르겠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돈도 없고 야망도 없다. 

     

    P84

    간밤에 한국 소설가 정지돈과 이상우, 한국 배우 조현철, 그리고 미국 배우 제이슨 모모아 등과 함께, 망해 버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어떤 물질을 찾으러 이 세계로 떠나는 꿈을 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샌프란시스코처럼 느껴지는 이 세계의 경주에서 제이슨 모모아가 강에 뛰어들어 대형 갈치를 잡았다. 갈치 머리에 올라타 뿔을 잡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모모아의 모습이, 잠에서 깬 다음에도 한동안 눈앞을 맴돌았다. 

    나윤이 감기 기운이 안 떨어져서 요거트 주고 약 먹였다. 

    머리를 묶어 주면서 나윤이에게 물었다. 

    "나윤아, 나윤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 거야?"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왜 아무것도 안 되고 싶어?"

    "엄마는 매일 회사에 가잖아."

    "... 매일 회사에 가는 게 싫어?"

    "응 매일 회사에 가기 싫어.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이래서 유전이 무섭다고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P96

    6월 14일 화요일

    아무래도 책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재작년 연말에 700권, 작년 연말에 300권 정도를 처분했는데, 그새 또 얼마나 많은 책을 산 건지...

     

    P202

    연신 하품하는 나를 보며 할머니가 "나윤아, 니네 아빠 맨날 피곤해서 큰일이다" 했더니 나윤이가 갑자기 "밤에 나 기침하면 아빠가 벌떡 일어나!" 하며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P208

    어느새 우리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무작정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그렇다고 하지 않기로 한 건 아니고, 하기는 할 거다. 언제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돈티비! 어때요

    지식이 돈이 되는 지돈티비

     

    P212

    다들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지속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지속 가능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 다들 별일 아닌 척한다. 좋은 생각이 있는 척, 바꿀 수 있는 척한다.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P223

    나윤이가 갑자기 괴물 놀이를 하자고 했다. 

    늘 그렇듯 아빠가 괴물을 맡았다. 

    "크아아아아아!" 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자 "얍얍얍얍!" 나윤이가 주먹을 뻗으며 빠르게 공격했다. "으으으으윽" 신음을 흘리며 내가 쓰러지자 나윤이가 말했다. 

    "이건 약한 건데? 일어나, 하트 안 닳았어!"

    괴물이 죽으면 놀이가 끝나니까 어떻게든 죽이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괴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힘들어 죽겠는데 죽지도 못하는... 그런 일요일이었다. 죽지 않는 괴물들의 오후...

     

    겨우겨우 설득해서 준비하고 알라딘 중고서점 일산점에 갔다. 

    나윤이의 첫(학습)만화책, 벌써 17년 전이던가? 내가 알라딘에 입사해서 어린이 분야 담당했을 때 팔던 책을 나윤이가 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묘했다.

     

    P258

    "왜 빨리 안와!!!"

    새벽부터 목욕탕에 다녀오느라 배가 고픈데 안 와서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르셨다고, 절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 나는 좀 지그지긋한 기분이 되었다.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두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는데, 언젠가 나윤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될까?

     

    P268

    상담사에게 집을 그려 보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늘 창문을 그려서 "그래도 소통의 의지가 없지 않네요"라는 말을 듣는다는 어느 날의 일기처럼. 그러니까 지승이라는 이름에 붙은 'ㅁ'이 '짐승'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창문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이터넷 서점에 등록된 리뷰르 보면서 느꼈지만, 읽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는 게 재미있었다. 누군가는 공감의 밑줄을 긋고, 누군가는 견디지 못하고 책을 덮는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일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의 일기가 아니라면. 그런데 왜 나는 계속 낯모르는 타인들의 일기를 읽으며 내 일기를 남들에게 보여 주는 걸까? 마치 세상이 나를 잘 알고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1979년에도 손택은 여전히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전부 빠짐없이 쓸 것. 늘 노트를 소지할 것."

     

    "에세이란 '평생을 작가로 살면서 도무지 한 가지 과제를 위해선 살지 못하는 데 대한 핑계'는 아닐가? 에세이가 그 핑계가 되어 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일기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에 연체가 2달 가까이 잡혔다. 이 책이 왜그리 읽기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남의 일기를 읽는데 흥미가 없나 보다. 작가가 같은 일산에 살고 있고, 내가 갔던 알라딘 중고서점(일산점)도 가보았고, 아이도 키우고 있고 공통분모가 많음에도 나는 이 책을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오래 걸렸다. 나의 게으름 때문인지, 그래도 한 번 읽기 시작한 책은 보통 끝까지 읽는다는 게 나의 신조이기 때문에 도서관에 반납을 하지 않고 조금씩 읽었다. 글쓰기에 괴로움을 느낄 때 글쓰기에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으면 괴로움이 두 배가 된다는 것이 딱 맞는 것 같다. 괴롭다 하지 말고, 그냥 뭐라도 써야 하는데...

    작가의 소소한 일상 아이에게 약을 먹이거나, 일상 대화, 자신이 밤에 꾼 꿈이야기 까지 책에 쓰는 것 나는 이게 과연 필요한가 싶다.

    한 편으로는 저렇게 모든 나를 오픈 하는 것이 책 쓰기의 기본인가라는 생각도 한다.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실명일 텐데, 그 사람들도 자신이 책에 등장하는 걸 알고 있으며, 허락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아직 나를 완전히 다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책 한 권을 쓰지 못한 건가 싶기도 하다.

    6월 14일 화요일 책을 정리한다는 일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책을 1,000권 이 넘게 샀단 말인가? 그렇다면 1,000권을 넘게 읽었다는 얘기인데, 물론 책을 읽는 사람은 많이 읽고, 안 읽는 사람은 아예 안읽는게 현실. 나도 1,000권의 책을 이제 겨우 50살을 넘겨서 읽어봤는 데, 역시 세상에는 나보다 고수인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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