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이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조사하기 위한 독서법이다. 다양한 내용을 속독으로 모두 읽고 데이터만 흡수하는 것이 아니다.(그런 목적이라면 구글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속독이란 글을 읽기 위한 독서법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빨리 손에 넣기 위한 수단이다.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 책을 읽으면 깊이 있는 책읽기가 가능해진다.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경제지식이 필요하다.
GDP는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국내 총생산"이라는 대답은 나오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합계"라는 대답은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럼 부가가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물으면 역시 묵묵부답이다.
책읽기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그것이 목적이여야 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에게 배울 것
"성공하고 싶으면 성공한 사람에게 배우자"는 것이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지금까지 "실패에서 배운다." 혹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하지만 나는 실패의 반대는 성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패의 반대는 또 다른 실패"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를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본문 도입부를 보면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갖고 있다. " 라는 말이 있다.
사회과학은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회과학의 목적은 무엇일까?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규범을 정하는 것이 사회과학인 것이다.
정독은 머리가 좋아지는 최강의 독서법이다.
논리를 좇아 빈틈없이 읽는다.
알고자 하는 부분을 확실한 논리를 세워 읽는다.
남에게 무언가 해줄 때는 그 일에 감사하기를 바라거나 보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선행에 의한 행동이라면 그것으로 위대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남에게 무언가 해주고 이득을 취하거나 보답을 기대한다면 본래 자신이 품었던 의미의 가치는 모두 사라진다.
공자는 재은은 있었지만 출세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해 단 한 번도 재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 그가 배우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첫 문장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들이 알아줄 만한 직책은 없어도 일부러 자신을 찾아주는 친구가 있다면 누구라도 기쁠 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공자는 그것에 대해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군자의 도리라고 말한다.
다독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독서법이 다독이다.
다독은 의미를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의식을 높일 목적으로 하는 독서법이다.
항상 원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넘어간다.
원점과 본질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기반으로 대응능력을 높이고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늘 공부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실무에 강한 사람은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학자를 바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학자 역시 실무자를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
양측의 업무를 경험함으로써 타이어의 크기도 키울 수 있고 균일한 압력도 유지할 수 있다. 덕분에 자동차는 울퉁불퉁한 길도 거침없이 지나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