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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2025년 이미 읽은 책도 까먹는다 2025. 11. 11. 20:26

동호
정대, 정대의 누나
정미누나
은숙누나
진수형
동호의 둘째형
동호의 엄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2인칭으로 너를 묘사하는 것은 내가 몰입이 되지 않고, 무엇가에 끌려가는데 가기 싫어서 발바닥을 바닥에 그리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주저앉았는데, 힘에 의해 질질 끌려가면서도 싫은 느낌이였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너는 본다.
2인칭으로 묘사되는 부분에서 나는 이 화자가 누구인지 몰라 몰입이 되지 않았고,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 촛불을 바라보는 동호를 바라보는 너는 정대의 혼이란 것을 알았다.
자정 무렵이었던 것 같아, 가냘프고 부드러운 무엇이 가만히 나에게 닿아온 것은. 얼굴도 몸도 말도 없는 그 그림자가 누구의 것인지 몰라 난 잠자코 기다렸어. 혼에게 말을 거는 법을 생각해내고 싶었지만, 어디서도 그 방법을 배운 적 없다는 걸 깨달았어. 아마 그 혼도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어. 서로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온 힘을 기울여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늒리 수 있었어. 마침내 체념한 듯 그것이 떨어져나가자 난 다시 혼자가 되었어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일에 익숙한 듯, 그는 술잔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이제는 제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슴,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용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달은 밤의 눈동자라고 했다.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뿐이야.
허락된다면.
부디 허락된다면.
죽지 마.
죽지 말아요.하나의 사건을 각 등장 인물의 시간과 감정으로 쓰여진 이책은 나에게 읽기에 너무 힘겨웠다. 무언가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아픔이나, 무언가가 단단히 박힌듯한 불편함. 각 주인공들이 그 상황에서 느꼈을 고통들, 억울함, 그리고 공권력 앞에 한없이 무너지는 무력함. 나의 존엄, 존재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시간들. 그리고 이렇게 했었다면 저렇게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온다. 동일한 사건에 등장인물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감정을 표현해 나가는 소설인데,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가 마치 현장에서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거나 훔쳐 보는 느낌이다.
다시 읽는다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동안 쉽게 이 책에 손대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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