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Shifting sands)(2016.04.25)
인생이란, 특히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 인생이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끝은 보이질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동안에는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많은 부분이 그 모습과 닮았다. 목표를 볼 수가 없고,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여부도 알 길이 없다. 그리고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란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아서, 건너편 저쪽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좌절감을 맛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항상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표를 추구하고 성취하는 데 중점을 두고,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문제점을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긴다. 이것이 바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악인의 정신이다. 하지만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1.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방황을 통해 진정한 방향 감각을 얻을 수 있다. 내면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알 수 있다면, 길을 잃었을 때에도, 지도가 없는 곳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면의 나침반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이 있다.
그 첫 번째가 목적지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추어 수준에 맞는 생활을 하면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돈이 아닌 다른 종류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는 새롭고 더 심오한 나침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나침반 바늘을 따르면 어떻게 될까? 비금전적인 풍요함을 맛보면, 가장 중요한 관계를 가꾸고 자기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며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지금 현재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여야 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며, 우리를 인도해 줄 의미 있는 나침반 바늘이 되어 줄 수 있다.
그 순간 하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어떨까?
이런 자세로 산다고 해서 해야 할 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일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가운데에서도 현재의 충만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렇듯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사막을 여행하는 마음 자세이며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이 더 풍요로워진다. 아마 그래서 투아레그족 언어인 타마셔크어는 내일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방황에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산의 가치관을 변화의 사막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목적 의식을 가지고 방황하기
하나는 목적지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목적 의식을 가지고 방황한다는 것은 우리를 이끌어 줄 방향을 추구하고 걸어갈 길을 찾는 것이지 문제를 그 자리에서 해결해 줄 마술과 같은 치료약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본격적인 여행길에 오르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다. 방향을 찾고 있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단지 사막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
세 번째 실수는 무의식적으로 배회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나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 안에는 분명히 나침반 바늘이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자기가 나침반을 따라오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방향 감각만 올바르게 잡혀 있으면 길을 잃었을 때도, 지도가 쓸모없는 그런 곳에서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다행히도 사하라를 건너는 여행자 중에 정상에 대한 열병을 앓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막에는 정상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산이 아니라 사막으로 보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때 내게 그토록 절실히 필요했던 산책이라는 오아시스를 침범했던 야만인은 바로 두려움과 걱정이었다.
사막의 종류가 다르면 그에 필요한 오아시스도 다르다.
사막 전체를 한꺼번에 기름진 정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지침 삼아 답을 찾다 보면 자기에게 필요한 오아시스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을 마치고 나면,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시간이 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막은 한 없이 계속된다. 사막을 다 건너 저편에 다다를 때쯤이면 무시하고 지나온 관계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막에 있다면 그 무엇보다도 오아시스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다.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인생의 사막에서는 어느 순간 미래를 향해 쭉 뻗은 일차선 고속도로가 끊기고 변화의 모래에 휩싸이는 순간이 있다.
갇히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인생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갇혀 본 경험이 없다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갇히게 되면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막히게 되었을 때 그 사실을 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체 상태에 빠졌을 때 좋은 점 하나는 자기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밀어붙이지 않기
자기가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막에서 겪는 변화는 종종 우리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꼬인 인간 관계의 사막에서 헤어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치유의 오아시스로 들어설 수도 있다.
4.
혼자서 여행하기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논리적으로 설명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내 안의 나침반이 계속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유명한 화가나 작가는 걸작을 창작할 때 도제나 조수를 활용한다. 하지만 스케치나 성격 묘사, 명암이나 줄거리 구상 같은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위임하지 않는다. 화가나 작가는 이 부분만큼은 나 혼자 작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창의성을 타고난 사람은 자기가 혼자 작업해야 할 부분을 직감으로 안다.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
우리 인생에는 따뜻하고 친숙한 캠프파이어들이 있다. 바로 가족, 친구, 집, 그리고 직장이다. 가치관, 일상, 인간관계 그리고 의식처럼,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 옳고 그름에 대한 우리의 판단도 캠프파이어로 볼 수 있다.
인생이 변화를 겪고 자신이 사막에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캠프파이어를 더 크게 지피기 위해 나뭇가지를 찾아 다닌다.
우리는 확실하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원한다. 애매모호하고 위험한 것은 싫어한다. 하지만 우리의 캠프파이어가 비추어 주는 것은 진짜 세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유목민과 친구하기
지금 내가 건너 있는 사막과 똑같은 사막을 건넌 경험이 없는 유목민이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사막을 몇 번 건넌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막을 여행할 때 꼭 지켜야 할 규칙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인생이 산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유목민들은 혼자가 되는 법과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인생에 대한 모든 답을 다 알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캠프파이어를 벗어나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현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최소한 예상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통스런 현실은 사막의 어둠보다는 덜 무섭다. 그래서 지겹고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불행한 관계도 그냥 참고 지내며, 친숙하고 오래된 믿음이나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 벗어나야 할 때가 코앞에 닥쳐도 그러질 못한다. 우리가 캠프파이어에서 멀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에 앞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느닷없이 날아오는 타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준비를 잘 해놓고 있어도, 아무리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도 뜻하지 않는 곳에서 나뭇가지가 튀어나와 머리를 후려 갈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몸을 숙여야 하는 그 순간을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자문을 해본다. 이 쇼크를 피하면 사막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여행을 중단하게 될까?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떨어지는 것은 사막을 여행하는 데에 꼭 필요한 중요한 규칙이다. 캠프파이어에서 물러나면 변화의 사막을 건널 수 있다.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앞으로 전진하지 못할 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때 내안의 일부가 죽는다. 단지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특정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속 보초가 당신은 열정을 따라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허상의 국경선에서 멈춰 버리면 열정도 죽는다.
우리는 그 국경선을 건너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 국경선을 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서나 실제 인생에서나 허상의 국경선은 미적거리며 머물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다. 허상의 국경선에서 멈추는 것이 보초에게 대드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도전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 보초의 허세를 깨달은 것이다.
빌의 마음속 국경 수비대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아. 하지만 그들은 오래지 않아 잘못된 믿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발견했다. 빌은 의사가 되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라 꿈을 버리기에는 너무 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로 우리는 우리를 경계선에 가두어 두는 잘못된 믿음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두려움이 우리의 이성을 가렸거나, 아니면 그 상태에 너무 몰입해서 진실이 아닌 것을 구분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념과 용기이며, 때로는 상담사의 지원이나 나를 트럭으로 뛰라고 외쳤던 탤리스와 같은 친구의 격려가 필요하다. 허상의 경계선을 넘고 나면 그곳에 더 심오한 진실이 있음을 깨닫기 위해 신념이 필요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하라 사막과 마찬가지로 우리에 인생에서 변화의 사막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끝난다.
사막이 끝났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는데도 그때까지 따라왔던 나침반의 바늘을 그냥 습관적으로 계속 따라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나침반의 바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변화의 사막을 건너고 나면 우리는 종종 평화와 안정의 순간을 맞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단지 안정과 평화, 성공의 마침표라 할 수 있는 해변에 도착하기 위해 과도기의 사막을 건넜다는 생각은 분명 잘못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는 유목민의 옷을 입은 등산가가 되고 마는 것이다.
선원이나 유목민들에게는 인생 자체가 여행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막에서 이동할 때 또는 바다를 항해할 때 그 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인생은 따분할 때도 있고, 무서울 때, 헷갈릴 때, 지겨울 때, 불확실할 때, 즐거울 때도 있다. 우리는 인생의 하루하루가 그리고 각각의 사막이 어떤 날을 선사해 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멋진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다.
멋진 여행이란 돈을 들여서 흔들림 하나 없이 길을 달리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단순히 여행하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이다. 멋지게 여행하는 것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밀물과 썰물을 평화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 앞에 놓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멋지게 여행할 때 우리는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것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