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한강 시집)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마크 로스코와 나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도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구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마크 로스코와 나2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곘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괜찮아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몇 개의 이야기 6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움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
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몇 개의 이야기 12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原石)과 같다.
오이도(烏耳島)
내 젊은 날은 다 거기 있었네
조금씩 가라앉고 있던 목선 두 척,
이름붙일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밀려와
나를 쓸어안도록
버려두었네
그토록 오래 물었던 말들은 부표로 뜨고
시리게
물살은 빛나고
무수한 대답을 방죽으로 때려 안겨주던 파도,
너무 많은 사랑이라
읽을 수없었네 내 안엔
너무 더운 핏줄들이었네 날들이여,
덧없이
날들이여
내 어리석은 날
캄캄한 날들은 다 거기 있었네
그곳으로 한데 흘러 춤추고 있었네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빰에,
얼룩진.
P162
새벽에 듣는 노래
빛과 어둠의 틈으로 "반쯤 죽은 넋"이 비친다. 절반쯤 죽은 넉은 이제는 껍데기로만 남은 타락한 언어를 가리키는 것일까.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가 가진 넋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시인은 반쯤 죽은 언어의 넋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가만히 "입술을 다문다." 언어가 타락한 세계를 애써 거절하는 방법은 오로지 침묵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말과 동거하는 인간으로서 한강은 침묵의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자, 그러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소설가이다. 암흑과 침묵 속에서 시를 쓰는 한강이 있고,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소설가 한강이 있다.
한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의 실재가 궁금했던 사람들은 이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펼치면 된다.
이 시집 안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시집을 읽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힘이 든다는게 내 육체적인 근육을 이용해야하는 일들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가볍게 읽고 지나갈 만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에세이와 비교하여도 현저히 작은 크기의 책과 페이지 그리고 그 페이지 안에 몇몇 단어로만 쓰여진 시집. 한동안 책읽기를 무조건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을 때, 책을 읽었다는 카운트를 늘리기 위해 집어 들었던 시집, 그림책 등도 일반 에세이 못지 않게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강의 이 시집[서럽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도 거의 한 달 가까이 걸렸다.
한강 특유의 삶과 죽음, 영혼, 핏빛을 표현하는 언어들은 읽는 내내 나를 압박하는 느낌이였다.
마치 묵으로 그려진 수묵화처럼 무언가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으나, 나는 그저 하얗고 까맣기만 한 그림속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무지의 영역에 그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 내가 알고 있던 것을 까먹었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모르는 그래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머리를 써봐도 알 수 없는 듯한 느낌.
어둠고 무겁기만 한 이 시집은 한강의 소설[흰]을 읽는 것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마크 로스코와 나]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의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이 시에서도 자기 자신을 무언가 전혀 다른 생명체 또는 물체처럼 그녀만의 언어로 다루는 것은
나로써는 선뜻 이해하기도 그렇게 쓰기도 표현하기도 힘든 부분이다. 무언가 책속의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 하기 어려우며, 또한 제 3자의 입장으로 보기에도 왠지 어두컴컴한 곳에서 무언가 찾으려 응시하는 그러다가 불현듯 무서운 동물이 뛰쳐 나올듯 한 느낌이여서 나는 이 책을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